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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주 전투의 날짜

'''고려사 현종 세가에 따르면 기해일인 1011년 1월 1일 (음력 1010년 11월 24일) ''', 요사 성종 본기에 따르면 서기 1010년 을유일(서기 1010년 음력 겨울 11월 10일 을유일(乙酉日 : 푸른 닭의 날) . 양력으로는 서기 1010년 12월 18일인 , 경술년(庚戌年) 무자월(戊子月) 을유일(乙酉日 : 요사 성종본기에 따르면 이 날이 거란 대군이 압록강을 건넌 날이다.) )의 다음날인 병술일(양력 서기 1010년 12월 19일  음력 11월 11일)에 거란 성종의 본대가 좌군/우군 방면이 막힘을 보고 고려 강조의 본대로 들이닥쳤다.   

요사 야율분노전 보면 언제 죽었는지 기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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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사 야율분노전 보면 언제 죽었는지 기록이 없다. // 耶律盆奴,字胡獨堇,惕隱涅魯古之孫。景宗時,為烏古部詳穩,政尚嚴急,民苦之。有司以聞,詔曰:「盆奴任方面寄,以細故究問,恐損威望。」尋遷馬群太保。統和十六年,隱實燕軍之不任事者,汰之。二十八年,駕征高麗,盆奴為先鋒。至銅州,高麗將康肇分兵為三以抗我軍:一營於州西,據三水之會,肇居其中;一營近州之山;一附城而營。盆奴率耶律弘古擊破三水營,擒肇,李玄蘊等軍望風潰。會大軍至,斬三萬餘級,追至開京,破敵於西嶺。高麗王詢聞邊城不守,遁去。 盆奴入開京,焚其王宮,乃撫慰其民人。上嘉其功,遷北院大王,薨。 "예륵분노(耶律盆奴), 자는 호독근(胡獨堇)으로, 첩은니륵고(惕隱涅魯古)의 손자였다. 경종(景宗) 때, 그는 오고부(烏古部)의 자리에 있었고, 그의 정치는 엄격하고 급진적이어서 백성들이 그것을 고생으로 여겼다. 관리들이 이 사실을 알리자, 칙령은 다음과 같았다: '분노가 지방을 맡고 있으니, 사소한 일로 조사하면 그의 위엄이 손상될까 염려된다.' 그 후 그는 마군태보(馬群太保)로 옮겨졌다. 통화(統和) 16년에, 그는 연군(燕軍)의 부적절한 자들을 정리했다. 28년에, 그는 고려(高麗)를 정벌하러 가는 군대를 이끌었고, 분노는 선봉이 되었다. 동주(銅州)에 이르렀을 때, 고려의 장수 강조(康肇)는 병력을 세 부대로 나누어 우리 군에 맞섰다: 하나는 주의 서쪽에 캠프를 차리고 삼수의 합류점을 점령했으며, 강조는 그곳에 머물렀다; 하나는 주 근처의 산에; 또 하나는 도시에 붙어서 캠프를 설치했다. 분노는 예륵홍고(耶律弘古)를 이끌고 삼수 캠프를 공격하여 강조를 붙잡았고, 이현운(李玄蘊) 등의 군대는 바람 앞의 산산조각이 되었다. 대군이 도착했을 때, 적 3만여 명을 처단하고 개경(開京)까지 추격하여 서령(西嶺)에서 적을 격파했다. 고려왕(高麗王) 순문(詢問)은 국경 도시가 방어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쳤다. 분노는 개경에 들어와 왕궁을 불태웠으나, 그의 민중을 달래고 위로했다. 임금은 그의 공을 치하하며 그를 북원대왕(北院大王)으로 승진시켰고...

날짜 표기(계속 작성 중)

날짜 표기 //나레이션  서기 1010년 음력 겨울 11월 10일 을유일(乙酉日 : 푸른 닭의 날) . 양력으로는 12월 18일인 , 경술년(庚戌年) 무자월(戊子月) 을유일(乙酉日)  거란 제국 즉 ‘요(遼)’ 나라의 황제이신 성종(聖宗) ‘야율융서(耶律隆緖)’는 상국(上國)인 거란의 허락도 없이 고려 왕 ‘왕송((王誦)’을 제멋대로 죽이고 ‘왕순(王詢)’을 멋대로 고려 왕에 즉위시킨 ‘역신(逆臣)’ 강조(康兆)를 토벌하기위해  친히 보병,기병 40만을 거느리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일제히 건넌다.(遼史 聖宗本紀)   그 때는 고려 현종(顯宗) 원년(元年)이었다. 중국어 번역 : 公元1010年农历冬季11月10日乙酉日(蓝色鸡之日),对应阳历12月18日,庚戌年戊子月乙酉日。当时,辽国皇帝圣宗耶律隆绪,为了讨伐未经辽国上国许可,擅自杀害高丽王王誦并擅自立王询为高丽王的逆贼康兆,亲自率领步兵和骑兵40万穿过结冰的鸭绿江。这时正是高丽宪宗元年。 // 미션 시작 시  요 성종 : 껄! 압록강이 얼어있군! "遼 聖宗 : 呵呵!鴨綠江已結?矣!" 요 성종 : 명심들하거라 우린 강조를 치러온거지. 고려를 해치러온게 아니니라 껄! "遼 聖宗 : 謹記之!吾等來討康兆,非來害高麗也。呵呵!" // 강조 이현운 납치할 때 대사 야율적로 : 너 종놈아 이제 쉬거라 천벌이 강조를 멀리 하겠는가? 耶律敵魯 : “汝奴休矣. 天伐詎可逃耶?” "Yelu Dilu"  :  "You, the servant, rest now. Can one escape the heavenly punishment?"  // 서기 1010년 12월 24일(양력). 음력으로는 서기 1010년 11월 16일 경술년(庚戌年) 무자월(戊子月) 신묘일(辛卯日)  바로 이 신묘일(辛卯日)에 고려 왕 왕순이 거란 임금에게 사신을 보내 항복하고 입조(入朝)할 것을 청하자, 거란 임금이 고려 왕의 항복을  허락하고 흥화진의 포위를 풀었다.

태조 강조 검차의 아침 대사 작성(계속 작성 중)

 태조 강조 검차의 아침 대사 작성  //나레이션  서기 1010년 음력 겨울 11월 10일 을유일(乙酉日 : 푸른 닭의 날) . 양력으로는 12월 18일인 , 경술년(庚戌年) 무자월(戊子月) 을유일(乙酉日)  거란 제국 즉 ‘요(遼)’ 나라의 황제이신 성종(聖宗) ‘야율융서(耶律隆緖)’는 상국(上國)인 거란의 허락도 없이 고려 왕 ‘왕송((王誦)’을 제멋대로 죽이고 ‘왕순(王詢)’을 멋대로 고려 왕에 즉위시킨 ‘역신(逆臣)’ 강조(康兆)를 토벌하기위해  친히 보병,기병 40만을 거느리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일제히 건넌다.(遼史 聖宗本紀)   그 때는 고려 현종(顯宗) 원년(元年)이었다. 중국어 번역 : 公元1010年农历冬季11月10日乙酉日(蓝色鸡之日),对应阳历12月18日,庚戌年戊子月乙酉日。当时,辽国皇帝圣宗耶律隆绪,为了讨伐未经辽国上国许可,擅自杀害高丽王王誦并擅自立王询为高丽王的逆贼康兆,亲自率领步兵和骑兵40万穿过结冰的鸭绿江。这时正是高丽宪宗元年。 // 미션 시작 시  요 성종 : 껄! 압록강이 얼어있군!  "遼 聖宗 : 呵呵!鴨綠江已結?矣!" 요 성종 : 명심들하거라 우린 강조를 치러온거지. 고려를 해치러온게 아니니라 껄!  "遼 聖宗 : 謹記之!吾等來討康兆,非來害高麗也。呵呵!" // 강조 이현운 납치할 때 대사 야율적로 : 너 종놈아 이제 쉬거라 천벌이 강조를 멀리 하겠는가? 耶律敵魯 : “汝奴休矣. 天伐詎可逃耶?” "Yelu Dilu"  :  "You, the servant, rest now. Can one escape the heavenly punishment?"  // 서기 1010년 12월 24일(양력). 음력으로는 서기 1010년 11월 16일 경술년(庚戌年) 무자월(戊子月) 신묘일(辛卯日)  바로 이 신묘일(辛卯日)에 고려 왕 왕순이 거란 임금에게 사신을 보내 항복하고 입조(入朝)할 것을 청하자, 거란 임금이 고려 왕의 항복을...

[고려거란전쟁 최대 미스터리] 단 2일만에 강조를 밟아버린 거란 황제 성종의 위엄? ㄷㄷ ㅋ 요사 성종본기와 고려사 현종세가의 기록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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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거란전쟁 최대 미스터리] 단 2일만에 강조를 밟아버린 거란 황제 성종의 위엄? ㄷㄷ ㅋ 요사 성종본기와 고려사 현종세가의 기록 차이 요사 성종본기 : 거란 대군이 '''을유일'''에 압록강 건넘. 강조가 저항하다 털리고 달아남. 요사 성종본기 : 을유일의 다음날인 '병술일'에 거란 야율적로가 동주(통주)에서 강조,이현운 사로잡음. 고려군 붕괴. 추격하여 죽이며 병장기,식량들 떨어뜨린거 마구마구 주움. 병술일의 다음날이 정해일이고 정해일의 다음날인 '무자일'에 흥화진 산성 빼고 강동 6주(동주(=통주),곽주,귀주,녕주)가 싸그리 항복. 고려사 현종세가 : 신묘일(을유일로부터 7일 후)에 거란 성종 40만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고 흥화진 산성을 포위하나 양규,이수화가 성문을 닫아 걸고 항복치않음. (고려 개경 조정이 신묘일에야 거란 성종이 압록강 건넌 것과 흥화진을 포위한걸 알게되었다고 보는게 맞음. 즉 이 고려사 현종 세가의 날짜 표기는 잘못된 것임.) 요사 성종본기 : 무자일이 지나고 무자일의 다음날인 기축일이 지나고 기축일의 다음날인 경인일이 지난 '신묘일'에 고려 왕 왕순이 항복하겠다는 말을 전하는 고려 사신이 옴. 거란 성종이 공격 일시정지 시킴. 고려사 양규전 : (성종이 압록강 언제 건너고 흥화진 언제 포위하고 통주 전투는 언제 있었는지 날짜 표기 전혀 없음) 성종이 '의로운 군사,하늘의 병사'란 깃발 40만개가 펄럭거리는 보병 기병 40만 대군으로 (겨울이라서 얼어붙은) 압록강을 (일제히) 건너며 "우린 강조 잡으러온거다."라고 말하며 흥화진 산성을 포위하면서 동시에 통주 근처 논밭에 유격부대 보내 사로잡은 고려 백성들에게 무료 한뿌 코스프레 시켜주고 흥화진 산성 성문 앞에 세워서 "양규야 성문 열어라. 우린 고려를 치러온게아니라 역적 강조를 토벌하러온거다. 봐라 우리 백성 잘 대해주잖아" 뭐 대충 이렇게 말함...

책사풍후의 요사 성종본기의 고려 정벌 기록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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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사풍후의 요사 성종본기의 고려 정벌 기록 번역 [ 7 冬十月丙午朔,女直進良馬萬匹,乞從征 高麗,許之。王詢遣使奉表乞罷師,不許。 겨울 10월 병오 초하루, 여진이 좋은 말 만 필을 바치며 고려에 대한 정벌에 동참하고자 청하였고, 이를 허락하였다. 왕순은 사신을 보내 군사 행동 중단을 요청하는 상소를 바쳤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 8 十一月乙酉,大軍渡鴨綠江,庚肇拒戰,敗之,退保銅州。 11월 을유일,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경조(강조)가 저항하나 패배하고, 동주로 후퇴하였다. 9 丙戌,肇復出,右皮室詳穩耶律敵魯擒肇及副將李立,追殺數十里,獲所棄糧餉、鎧仗。 병술일, 경조가 다시 출전하였으나, 우피실 상우 예루덕루가 경조와 부장 리리를 사로잡고 수십 리를 추격 살해하며 버려진 양식과 무기를 수습하였다.  戊子,銅、霍、貴、寧等州皆降。 무자일, 동, 확, 귀, 영 등 주들이 모두 항복하였다. 10 排押至奴吉達嶺,遇敵兵,戰敗之。辛卯,王詢遣使上表請朝,許之。禁軍士俘掠。以政事舍人馬保佑為開京留守。安州團練使王八為副留守。遣太子太師乙凜將騎兵一千,送保佑等赴京。 샤오파야가 누기달령에 도착하여 적군을 만나 전투에서 이겼다.  신묘일, 왕순이 사신을 보내 조정을 청하였고,  이를 허락하였다.  군사들이 약탈을 일삼는 것을 금지하였다.  정사사인 마보유를 개경 유수로, 안주 단련사 왕팔을 부유수로 임명하였다.  태자 태사 을림이 천 기병을 이끌고 마보유 등을 수도로 호송하였다. 11 壬辰,守將卓思正殺遼使者韓喜孫等十人,領兵出拒,保佑等還。遣乙凜領兵擊之。思正遂奔西京。圍之五日不克。駐蹕城西。高麗禮部郎中渤海陀失來降。庚子,遣排押、盆奴等攻開京,遇高麗兵,敗之。王詢棄城遁去,遂焚開京,至清江,還。 임진壬辰에, 수장 탁사정卓思正은 요遼의 사자 韓喜孫 등 십인을 살해하고  병력을 이끌고 나가 저항하며 보유 등은 돌아갔다. 乙凜을 보내 병력을 이끌고 그를 공격하였다. 思正은 결국 西京으로 도망쳤다. 5일간 포위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城西에 ...

흥화진 산성에서 전투 없었다는걸 명확히 이해 가능하게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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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화진 산성에서 전투 없었다는걸 명확히 이해 가능하게 설명 //서기 1010년 음력 겨울 11월 을유일(요사 성종본기의 성종이 대군 거느리고 압록강 건넌 첫 날) 거란 성종이 40만 대군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음력 겨울 11월 을유일에 건넜고,(요사 성종본기) (이 때의 압록강은 얼어있어서 일제히 건너는게 가능하다.) 그걸 보고 강조가 꺆하며 도망쳤고(사실 강조가 아니라 부산진 성주 정발 자세로 사냥하면서 정찰하고있었을 흥화진 성주 양규였을거. 고려사 강조전 보면 '진주' 즉 흥화진 주의 약자로 보이는 '진주'가 나타나 강조와 다급하게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로 전후 맥락이 명확해지는 것이다. 아하! 어허! 오호!), 동시에 성종이 보낸 유격대 벌쳐들,저글링들이 통주성 남쪽 동주 방면으로 도망치는 그 고려 장수를 추격하며 가서 아주 빠르게 통주 근처 논밭의 백성들을 사로잡아와서 무료 한뿌 코스프레 시켜주고 , 동시에 유격대 저글링들이 가서 빠르게 통주성 남쪽의 동산 남쪽의 동주 3개 강물에 진친 강조의 30만 대군 검차진을 발견하고 대충 툭툭툭 건드리고 , 한편 성종은 바로 흥화진을 포위 해서 무료 한뿌 코스프레한 백성들로 하여금 "우린 고려를 치러온게 아니다 고려 상국으로서 역적 강조를 쳐서 도탄에 빠진 고려 왕실을 구하러 온거니 고집 그만 부리고 성문을 열고 폐하의 은혜를 받아뫼셔라."라고 외치게하고, 화살에 편지 매겨서 푱 쏴서 보내서 대화하고, 사신을 보내서 계속 대화시키고, 비단 , 은 뿌리고 이러면서 절대 흥화진은 치지않게하면서 흥화진과 통주의 연락을 완벽히 차단시키고, 그러다가 밤이 되어 자정이 지나 //서기 1010년 음력 겨울 11월 '병술일'  (성종이 압록강 건넌 을유일의 바로 그 다음 날)  (요사 성종본기) 을유일의 다음날인 '병술일'이 되자 성종이 20만 보병 20만 기병 중 20만 기병을 몰래 스윽 분리시켜서 그걸 데리고 이려 하고 동주 삼수채 강조 30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