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24의 게시물 표시

임용한은 흥화진에서 7일간 전투 있었다라고 아주 당당히 말하는데.

임용한은 흥화진에서 7일간 전투 있었다라고 아주 당당히 말하는데. 흥화진에서 7일간 전투 있었고 흥화진 못 따먹으니까 거란 성종이 끙하고 대신 통주 삼수채의 강조 잡으러 간거라는데. 실제 고려사 사료엔 그딴 소리 없음. 그럼 과연 흥화진에서 7일간 전투가 있었나? 거란 사료 요사 성종본기 보면, 거란 성종은 을유일에 압록강 건넌 후 , 바로 다음날인 병술일에 동주(통주)를 쳐서 강조 잡았다고 나옴. 즉.., 7일간의 전투는 임용한의 뇌내망상이고  강조는 7일도 아니고 전쟁 개시 2일만에 목이 따임.  그리고 충격적이게도 요사 성종본기에 따르면 압록강 건넌지 7일만인 신묘일에 고려 현종이 사신 보내서 항복하고싶다고 요청한거로 나옴. 물론 그게 100% 진심인지 아닌지는 의문이지만. 성종은 약탈 금지, 전투 일시정지 시키고 서경과 개경에 총독들을 파견함. 애초에 성종은 강조를 잡고 고려 왕의 버릇 길들이러온거지.  고려를 불바다 피바다 만들려고 온게 아님. 근데 여기서 잠깐 짚고넘어갈 점은, 엉뚱하게도 고려사 현종세가에는 신묘일에 거란 성종의 40만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서 흥화진을  포위했다고나옴. 요사 성종본기는 을유일이라는데. 고려사 현종세가는 을유일로부터 7일 후인 신묘일로 나옴. 뭐가 맞나? 당연히 침공자 측인 거란 기록이 맞지. 그럼 고려사는 왜 그렇게 적었나? 너무 강조가 빠르게 쳐발려서 거란이 압록강 건넜다는 보고가 을유일로부터 7일 후인 신묘일에야 개경에 당도한거라고 보면 됨.  자, 다시 본래 얘기로 돌아와서... 그렇게해서 신묘일의 항복 후에 전쟁이 이제 끝나나 싶었더니 근데 탁사정 이 미친 놈이 서경에 온 거란 사신 한씨韓氏와 사신단을 죽임.(탁사정은 강조의 당파라서 강조를 죽인 거란을 절대 곱게 대접할수가 없음.) 이에 노한 성종이 서경을 치자 탁사정이 도망침. 근데 서경이 함락이 안됨. 철옹성이었음. 성종이 끙 고려 십새들 날 가지고 놀아? 이러면서 개경으로 쳐들어오자 고려 왕이 힉 하고 도망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