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은 흥화진에서 7일간 전투 있었다라고 아주 당당히 말하는데.
임용한은 흥화진에서 7일간 전투 있었다라고 아주 당당히 말하는데.
흥화진에서 7일간 전투 있었고
흥화진 못 따먹으니까 거란 성종이 끙하고 대신 통주 삼수채의 강조 잡으러 간거라는데.
실제 고려사 사료엔 그딴 소리 없음.
그럼 과연 흥화진에서 7일간 전투가 있었나?
거란 사료 요사 성종본기 보면, 거란 성종은 을유일에 압록강 건넌 후 , 바로 다음날인 병술일에 동주(통주)를 쳐서 강조 잡았다고 나옴.
즉.., 7일간의 전투는 임용한의 뇌내망상이고
강조는 7일도 아니고 전쟁 개시 2일만에 목이 따임.
그리고 충격적이게도 요사 성종본기에 따르면 압록강 건넌지 7일만인 신묘일에 고려 현종이 사신 보내서 항복하고싶다고 요청한거로 나옴.
물론 그게 100% 진심인지 아닌지는 의문이지만.
성종은 약탈 금지, 전투 일시정지 시키고 서경과 개경에 총독들을 파견함.
애초에 성종은 강조를 잡고 고려 왕의 버릇 길들이러온거지.
고려를 불바다 피바다 만들려고 온게 아님.
근데 여기서 잠깐 짚고넘어갈 점은, 엉뚱하게도 고려사 현종세가에는 신묘일에 거란 성종의 40만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서 흥화진을
포위했다고나옴.
요사 성종본기는 을유일이라는데.
고려사 현종세가는 을유일로부터 7일 후인 신묘일로 나옴.
뭐가 맞나? 당연히 침공자 측인 거란 기록이 맞지.
그럼 고려사는 왜 그렇게 적었나? 너무 강조가 빠르게 쳐발려서 거란이 압록강 건넜다는 보고가 을유일로부터 7일 후인 신묘일에야
개경에 당도한거라고 보면 됨.
자, 다시 본래 얘기로 돌아와서...
그렇게해서 신묘일의 항복 후에 전쟁이 이제 끝나나 싶었더니
근데 탁사정 이 미친 놈이 서경에 온 거란 사신 한씨韓氏와 사신단을 죽임.(탁사정은 강조의 당파라서 강조를 죽인 거란을 절대 곱게 대접할수가 없음.)
이에 노한 성종이 서경을 치자 탁사정이 도망침.
근데 서경이 함락이 안됨. 철옹성이었음.
성종이 끙 고려 십새들 날 가지고 놀아? 이러면서 개경으로 쳐들어오자 고려 왕이 힉 하고 도망침.
거란 장군 소배압은 고려 백성들을 위로하고, 고려 궁궐을 불태움. (학살,약탈이 있었다는 소리는 없다. 물론 거란측 사료라서 100% 완벽히 믿을 수는 없지만
고려측 사료 역시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음.)
// 결론 :
하여튼, 결론은 흥화진에서 7일간 전투 없었다.
강조는 전쟁 개시 2일만에 목이 따였다.
//내용 보충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강조가 흥화진 바로 근처인 통주 쪽에서 떡하니 30만 데리고 검차로 방어진 짜고 길막하고있는데. 성종이 왜 강조를 안 치고 흥화진에서 일주일간 시간 낭비하냐? 말이 안되잖아. 이건 마치 당태종이 주필산 쪽 15만 고구려 대군 놔두고 바로 근처인 안시성에서 7일간 공성전 펼치고있다는 소리잖아. 공성전 하고있으면 고연수가 그걸 그냥 보고만있냐? 강조는 그걸 그냥 보고만 있고?
거란 성종이 을유일에 압록강 건너자마자 40만 대군으로 흥화진을 포위했는데. 치지는 않았어. 그리고 약간의 유격 부대를 근처 통주로 보내서 통주 논밭의 백성들을 사로잡아와서 흥화진 앞에 세우고 백성들로 하여금 "우린 강조를 잡으러온거지 너희들을 치러온게아니다 항복하라"라고 말하게해. 그렇게해서 흥화진에 편지 묶인 화살을 쏘아보내고, 사신을 보내서 은과 비단도 하사하는 등 회유 전략을 펼쳐. 그게 딱 을유일 하루 동안에 벌어진 사건이고. 날이 저물면서 밤이 되자 그때 성종이 40만 대군 중에서 20만 기병을 따로 분리시켜서 강조 쪽으로 어택 땅 찍은거야
어택 땅 찍을 즈음 이미 성종이 보낸 선봉 부대. 야율분노,야율적로가 어찌 그리 빨리 알아냈는지 강조 진의 허점을 발견해. 삼수의 보루 쪽이라는데. 거길 뚫었나봐. 아마 미나모토 요시츠네처럼 험한 절벽을 말 타고 내려온건 아니겠지.. 하여튼 강조,이현운은 방심하며 알까기 하고있다가 금방 사로잡혀서 담요로 둘둘 말려서 납치당함. 그리고 쉴 틈을 주지않고 성종의 20만 기병이 검차 진을 시원하게 뚫고 들어와버림. 그렇게해서 GG친거지.
//침략자 기록이 더좋다는건 뭔뜻이냐?
광개토비 보면 자기들이 어떻게 이겼는지 기록이 상세한데. 쳐발린 측인 모용선비나 백제 측 기록은 좀 내용이 부족하잖아.
조선왕조실록을 보더라도 부산진성 성주 정발이 사냥하다가 왜군이 오는걸 보고 급히 성으로 돌아오는데 오기도전에 이미 왜군이 성벽을 넘고있었고 정발은 난전 중에 뒤졌다라고 나올 정도로 굉장히 황당한 기록 나오는데. 일본측 기록이나 고니시 유키나가측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프로이스 일본사에는 그딴 소리가 없음.
'승리한 정복 전쟁'의 경우에는 침략자측의 기록이 쳐맞은 측의 기록보다 정확함. 쳐맞은 측은 패전지장나 패잔병이 어떤 보고를 하냐, 보고를 할 때 얼마나 숨기냐 혹은 적고있는 측이 어떤 정치적 이유에 따라서 이건 숨기지않고 적고 어떤건 숨기고 이런 뭐... 그리고 궁궐이 싸그리 불타버리면 보고받던 정보 기록들도 싸그리 소실되고... 하여튼 쳐맞는 측은 혼란의 혼란의 혼란의 연속이라서 침략하고있는 측보다도 기록이 정확하기가 힘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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